1. 미국 필라델피아주 피츠버그 낙수장
목욕탕이나 여관이름처럼 들리는 낙수장((落水莊, Fallingwater)은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인근의 한 근현대 문화재의 이름이다.
레젼드 반열의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주말 별장 건물로서, 흐르는 물, 즉 계곡과 작은 폭포 위에 지어진 집으로,
집에서 바로 문을 열면 폭포와 대자연을 감상할수 있는 컨셉의 자연과 친화된 주거양식의 대표작이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이런 자연친화건축의 대표적 예이기도 하다)
이 집주인은 피츠버그에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던 쿠프먼 사장이었는데,
이집 아들내미가 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밑에서 잠시 공부하기도 했다.
이 부자의 집 -상당히 괜찮았던 집이다, 역시 당대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에 초대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아들내미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 이집은 자네 아버지의 높으신 격에 맞지 않네 ] 따위의 상업적 멘트를 흘렸고,
그 의도한 영악한 첫 수확물이 이 낙수장이다.
원래 의뢰인 백화점 사장은 건물을 폭포 아랫쪽에 지어달라고 했으나,
말빨이 끝내줬을(스타건축가의 필수불가결 요소다) 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신의 폭포 바로위에 건물을 올리는 안을 관철시켰다.
거기에 도면이 나오지 않는다며 버럭 전화를 주고 몇시간안에 차를 몰아 득달같이 방문한 백화점 사장이 오는동안 이 기본 스케치를 만들어 냈단다.
물론 수개월동안 이곳을 답사하고 그 컨셉이 머릿속에 있었겠지. 명성과 말빨로 도배하는 이런 뺀질이 건축가 같으니.
1935년 당시에 매우 드물던, 강화노출콘크리트를 이용한 켄틸레버 구조를 사용한것이 이 건물의 특이점이다.
즉 이 건물의 무게중심은 한곳에 모여있고 커다란 패널이 그 힘을 분산하고 있는 형태인데,
음...다이빙대를 생각하면 된다.
당시에는 너무 드문 구조의 시도라서 건물시공시 시공업자가 바뀌는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거푸집을 떼어낼때 건물이 무너질까 서로 안하려고 해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직접 했다는 일화가 있다.
건축가가 혹시나 해서 지시한, 계획보다 2배 많은 철근의 배근이 실제로 정상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았고,
너무 진보적인 디자인이었던지, 켄틸레버가 건물 지지의 제 역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과다한 하중이 걸려 현재 집이 이름그대로 정말 falling 하고 있어 보수공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참고로, 뉴욕의 브루클린 브릿지는 감독관이 당시기술의 원 설계가 요구하는것보다 6배하중을 견디는 고장력스팬을 설치했다.
덕분에 동시대에 지어진 다리들은 무너지고 재시공 되어 원형이 남아있는 것이 드문데,
브루클린 브릿지는 현재도 위풍당당히 서 있는 게다.
좀 해놓고 아무래도 켕기고 무서우면 확실히 보강을 해줘야지 2배로는 그닥.. )


물론 당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활발한 건축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늘 적자였고,
일본 물건을 사다가 자신이 만든 집 안을 꽉꽉 채워 함께 팜으로서 한동안은 아트 딜러로서 돈을 더 많이 벌었다고 한다.
나중에 복사품을 진품인양 판것이 발각되어 원본을 고객들에게 돌려주었지만
결국 재판을 받았고 아트 딜러로서의 생명도 끝났지만 말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전시되고 있는 이 낙수장의 뮤지엄샵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취향을 반영하듯
값비싼 일본산 물품을 잔뜩 팔고 있다. (아직도 복제품을 진품가격에 팔고 있진 않겠지..^^ )
사실 이 건물-쿠프먼 집안과의 협업작품 1번-을 짓는 동안, 이 백화점 사장 쿠푸먼의 부인과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드는
눈이 맞아서 일본으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글들도 있는데, 그때 이미 일본 예술품 판매업을 하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사업상 아트 딜링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백화점 집안 사장 사모님이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부인, 자신의 어머니와 바람난 건축가를 그 집안에서 수십년씩 고용한건 좀 많이 말이 안된다.
(물론 예술적 성향이 많고 과시적이기까지 한 스타 건축가들중 사생활이 복잡하신 분들 많다. 이분도 역시 만만치 않아서 이런 뒷담화 가쉽이 생기는게 좀 매우 당연하기는 하다.-_-;; )
어쨌든 이 집 이후 25년간 이 쿠푸맨 일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훌륭한 클라이언트로 여러 건물- 다른 랜드마크로 등록된 멋진 건물- 함께 지었고 이 노장 건축가가 사망할 당시에도 협업 상태로 뭔가 구상하는 중이었단다.
어쨌든 사는 동안 이 백화점 사장은 엄청난 고생을 했다.
한번은 건축가에게 [이봐 지금 이집 테이블 위로 물이 줄줄 떨어지고 있거든?] 이라 전화했더니, 답변이라고는
[그럼 테이블을 딴데로 옮기시죠] 라는 코멘트를 받았단다.
25년간 이들이 서로 싸우며 to HELL 을 언급하며 싸운 애증관계의 편지들은 지금까지 잘 남아 있다.
이렇게 백화점 사장은 폭포위에 설치된 습기 가득한 환경적 태생의 문제로, 잦은 결로현상으로 무지하게 고생하며
이집을 [일곱 바께쓰 집]으로 부르다가
(양동이라 하지 않겠다. 이건 거주민의 신경질이 담긴 용어이어야 한다)
1963년 결국 시에 기증해, 지금은 1년에 12만명이나 이곳을 찾는다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지역문화재이자, 유명 관광 코스가 되었다.
난 정말 이 백화점 사장의 인내와 지지가 신기하다. 아마도 피가학적 취향이 조금 있으셨었듯.
그리고 사실 당대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매우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상당히 예술적 안목이 높았던 이 백화점 사장, 미우나 고우나 이 전설의 스타 건축가에게 딸려 다닌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서로가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디자인적 진화가 나오지 않았겠고,
뭐 후대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잘 고쳐 쓰고 있으니 이정도면 됬다.
2.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옥인아파트
옥인아파트는, 약간의 키치적 관점에서
내가 한국의 낙수장이라고 부르고 싶은 아파트다.
그 자연적 배경, 그리고 자연에 순응한 인간적 방법이 말이다.
물론 키치적이라고 강조해야할만큼 건물 자체의 예술성은 없다.
69년에서 72년사이에 서울의 산등성이 판자집을 밀어내고 지은 시민, 시범아파트의 급조된 한 케이스이니 말이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에 1971년에 완공된 이 아파트는,
지금이라면 엄두도 못낼
인왕산 자락의 커다란 암반과 계곡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청계천 프로젝트시 그 물줄기의 시작으로 처음에 추정되기도 했던 아주 산골짜기 깊은 수원이다.
어떻게 이 계곡물 흐르는 암반층을 따라 아파트단지의 건축허가가 날수 있었는지는, 당시 관계했던 사람만이 알 테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작업의 논리가 대한민국 육해공을 다 꿰뚫었을 때였으니 가능한 산물이다.
거기에다 도시안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편리하게 접근 가능하면서도, 뒷문을 열면 인왕산 자락 암반이 발밑에 있음을 실감하는,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것과 인왕산 등반로 시작길이 같은 5미터 반경 안에 있는 이런 구조는
정말 자다깨다 죽어도 다시는 못 짓는 그런 신기한 아파트다.
*물론 저 골짜기엔 물이 졸졸졸 흐른다. @.@
이 옥인아파트의 9개 동 배치는 흔히 우리가 보는 아파트의 배치가 아니다.
보통 산자락에 아파트를 배치할경우 산을 등지고 그 불어오는 좋은 공기를 혼자 먹겠다고
산자락 파먹고 들어가 콘트리트 바닥에 굳게 치고 참 거만히도 180도 로 펼친 형태의 숨막히는 동 배치를 하는데,
이 인왕산 자락의 옥인아파트, 그 콘크리트와 미색페인트로 바쁘게 근대화작업을 하던 무대뽀 70년대에,
신기하게도 이 멋진 계곡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지반 평탄화 작업을 하지도 않았거니와,
산바람이 그 아래까지 잘 드나들 수 있도록 적당히 분절된 5층짜리 건물들을 90도 직각으로 세워
진입로에서 보면 건물 옆통수만 보여주며 경사지게 산자락을 따라 배치했다.
아마도, 인왕산 서쪽능선 자락에 위치한 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남향건물을 세우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청계천이네 뭐네 다 콘크리트로 덮고 깍던 시기에 이 계곡암반과 물을 살려둔건, 정말 너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진바로 위 오른쪽] 계곡을 덮지 않고, 계곡을 따라 그 옆에 건물을 앉힌 형태라서 건물 배치가 특이하고, 결국 한 동에서도 그 층고차가 2층정도나 나는 곳도 있다.
3. 미국 낙수장 VS 대한민국 옥인아파트
3.1 낙수장과 옥인아파트의 자연존중 방식의 유사점.
사진왼쪽 낙수장] 낙수장(Fallingwater) 를 대문자로 쓴것처럼, 이 건물의 존재는 너무 유명해서 저 Fallingwater가 고유명사가 되었다.
사진오른쪽 옥인아파트] 옥인아파트 간판은 그냥 정겨울 따름이다. 트 자를 보라.^^ 이 60,70년대 공공건물에서 보이는 하얀페인트바탕위 국한문혼용 글자체는 요즘 연구되는 컬리그래피의 복고풍 한 예가 될듯 하다.
사진왼쪽 낙수장] 낙수장이 개인 최고급 별장으로서 그 럭셔리한 품새로 자연을 끌어담은 예.
건물 안쪽으로 원래 폭포를 구성하고 있던 돌덩이가 들어와있다.
사진오른쪽 옥인아파트] 서민집단을 위한 옥인아파트의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최선을 다해 자연을 끌어담은 예
계단이나 각종 석축들은 원래 그자리에 있던 인왕산 암반들이다.
사진왼쪽 낙수장] 산속 폭포에 자리잡은 큰 고저차를 고려해 설계된 낙수장 내외부
사진오른쪽 옥인아파트] 인왕산 암반자락에 얹어진 고저차를 보여주는 단지내 샛길
사진왼쪽 낙수장] 산속 모습
사진오른쪽 옥인아파트] 인왕산을 뒤로 한 모습
사진왼쪽 낙수장] 건물 외장에서 기존의 암반을 이용한 모습, 낙수장은 건물의 한 귀퉁이로 끌어안았고,
사진오른쪽 옥인아파트] 옥인아파트의 저것은 쓰레기장 경계석이다. -_-;;
[사진 왼쪽 낙수장] 낙수장은 원래 있던 나무때문에 저렇게 보를 굽이치게 만들었는데,
원래 나무가 죽어서 그냥 남기기 뭣 했는지 다시 얇은 나무를 끼워넣었다.
[사진 오른쪽 옥인아파트 ] 우리의 옥인아파트의 대자연 끌어안기는 낙수장보다 더 스케일이 크다.
계곡과 물과 계곡에서 자라는 덩굴 그리고 나무들이 이 암반 바로위에 얹혀있는 아파트의 대자연의 베란다 화분의 기능을 한다.
3.2 이름모를 손에 의한 옥인아파트가, 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보다 나은점
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드는 자신의 고집대로 폭포위에 건물을 올려, 대자연을 끌어안은 명작, 낙수장을 만들어 냈지만,
건물자체로서는 그 안에 인간을 담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의 기본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그 기초기능에서는 빵점이다.
폭포의 물이 집 아래로 지나가 바로 앞에서 절벽을 이루어 떨어지니 그 소음문제와 심한 습기로 사람이 살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원래 건물 인테리어 자체도 미니멀리즘의 단순함을 과시하느라 아예 서재 부엌 방 이런 공간을 나누는 벽이 없는지라,
보기엔 탁 트인 공간감에 매우 뽀다구 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은 그 공간구분과 프라이버시 침해로 매우 불편한 구조다.
(사진아래, 결국 사람이 살수없다고 기증되어 결국 박물관으로 쓰이는 낙수장)
대가의 손길이 닿은 거부의 별장 낙수장처럼 멋지진 않지만, 우리의 옥인아파트는
그 명작이 놓친 인간본연의 문제, 사람이 그 안에 거주하고 끌어안는 사람냄새의 관점에서
낙수장이 이루지 못한, 그리고 주택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을 충실히 가지고 있다.
아무리 바비인형이 38 18 34의 신체사이즈면 뭘하나. 딱딱한 인형일뿐.
내옆의 34 34 34의 살아 움직이고 따뜻하게 안을수 있는 실물인간이 나은게다. (사진아래, 사람들이 거주하는 옥인아파트)
4. 옥인아파트의 현재
하지만 지금 이 옥인아파트는 철거 직전이다.
노후도가 C등급인데다가 1종주거 자연경관지구로 묶여 있어 현실적으로 재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이를 인수하고 기존 건물을 다 철거해 예전의 모습 그대로, 인왕산 자연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근데 보는 나로서는 참 아쉽다. 이 구조물이 가진 값어치가 너무 아깝다.
옥인아파트를 부수고 그곳에 들어설 자연공원의 설계는 뭐 평이하다. 아주 평이하다.
인왕산 북한산 남산 심지어는 금강산 어디에 가져다놔도, 어디서든지 볼수 있는 아주 평범한 공원 말이다.
있는 특별한 가치를 허물어 어디든지 다 있는 비스므레한것 만들기는, 지나친 역사의식에 옭매인 강박관념의 산물이다.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이렇게 자꾸 무시하다간, 우리에겐 50년의, 그리고 100년의 기억의 워프가 생길지도 모른다.
다들 외계인에게 끌려가서 전기의자 묶여있다 오셨나, 왜 자꾸 한국의 근현대사를 부정하는게지?
이왕 가진, 그리고 다시는 세울수 없는 이 천혜의 자원을 좀 똘똘히 이용하는건 어떨까?
이정도 5,6층으로 야트막해서 90도로 허리를 틀어 얌전히 인왕산을 존중하며 세워진 이녀석들은
예전 수십층짜리 거대한 몸을 하고 남산을 180도로 가로막아 폭파된 남산 외인아파트랑은 질적으로 다르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것도 의미있지만,
이러다간 서기 2030년에는 대한민국에 서기 2025년 이후에 태어난 아파트만 서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어짜피 공공으로 그 사유권이 넘어가서 일괄 시행되는 프로젝트인데 말이다.
난 이 9동의 건물중, 암반위에서 바로 계곡을 향하고 있는 몇 동만 헐어 아주 큰 계곡의 트인 정경을 만들고
(이 옥인아파트 철거 이유중 하나가, 자연보호구역의 [일부] 침범이기도 하다. )
공용의 멋진 정자 하나 넣어서 진정한 낙수장 정자위에서 교류의 장을 만들고,
이 인왕산 자락에 바짝 붙어있는 저 5층짜리 아파트 건물들, 국제 유스호스텔 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적극적 구조보강과 리모델링, 그리고 동피랑 프로젝트같은 잘된 케이스의 조합이면 가능할듯.
어짜피, 이런 인왕산자락 계곡에는 앞으로 죽었다 깨도 다시 건물 못 짓는데,
이대로 이렇게 허물어버리는건, 너무 이것이 무궁무진하게 가지고 있는 잠재기회요소가 별 일곱개인데 말이다.
주어진 기득권 잠재기회요소 1:
예전 강북 파이낸스 센터와 강남의 스타타워의 외국 글로벌 기업의 입주전에서,
테헤란로에 위치해 각종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높은 강남 스타타워보다,
의외로 강북 파이낸스 센터가 승자가 되었다.
외국인 기업의 입장에서, 자신의 본국에도 똑같이 있는 초고층 아파트와 초고층 인텔리전트 빌딩은 그다지 매력이 없었고,
덕수궁을 내려다 보며 서울 도시의 옛 모습을 느낄수 있는 강북의 스타타워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기득권 잠재기회요소 2:
관광한국 관광한국 이렇게 말만 하는데, 예전 2002년 서울 월드컵때 우리나라는 숙박문제때문에 난리였다.
덕분에 서울 부심지의 러브호텔까지도 외국인 손님을 받으라며 행정적 권고가 내려졌었다.
또한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은 한국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탓에
서울한복판에서 힘들게 들어갈수 있는 전통한옥형 홈스테이같은것에서 장기투숙을 하며 서울을 맛보고 있는데,
이건 참 그 공급이 너무 적다. 백년전 한국의 모습의 원형은 아니더라도,
중간중간에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인 박노수가옥이나 불국사(경주가 아닌 서울 인왕산의 조그마한)와 대나무숲을 볼수 있는
이 종로구 옥인동 효자동 일대의 기본 역사 인프라도 아주 훌륭하다.
주어진 기득권 잠재기회요소 3:
거기에 요즘 한국 지자체 여기저기서 펑펑 터뜨리는건 영어마을의 성립이다.
서초구 서래마을에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건 누가 거기 가라고 해서 한게 아닌,
그곳의 자연적 끌림(프랑스 학교가 거기 있음으로)과 도시안의 전원적 기반 환경이 갖추어 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역사 = 종로의 역사 이니, 종로구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은 너무나 많다.
그냥 왠 빈땅 한곳에 웅장한 성채같은걸 지어 영어마을이라며 외국인에게 거기서 일하고 살라고 돈 쥐어줄 필요 없이,
이 외국인 전용 유스호스텔이 잘 되어 장기거주인구가 높아진다면,
이 일대는 영어가 필요한 영어마을, 국제마을이 당연히 될 것이고
장기 투숙객중 보다 한국사람들과 깊게 교류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변 커뮤니티에 영어 자원봉사처럼 기여하는 일이 생길게다.
적어도 이 앞 스타벅스에서는 영어가 혼용되겠네. 이태원 용산기지앞 이상한 커피숍 말고 말이다.
낙수장이 그 펜실베니아에서도 한참 운전해서 들어가야 하는 고립된 위치에서도 연 방문객이 12만명이다.
이렇게 지하철과 버스로 접근이 쉬운, 그리고 재래시장과 청와대와 고궁과 저택과 전통주거양식의 혼재를 끼고 있는
이 옥인아파트가 국제 유스호스텔 촌이 된다면,
관광한국, 관광서울을 외치는 이 시점의 아주 유용한 도시 인프라가 될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살아온 근대사도 우리의 역사임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5. 돌아나오며
늘 생각하지만, 대한민국 쓸데없이 번쩍번쩍 이상한것 들여와 이식하려다 실패하지 말고 있는것좀 잘 이용하자.
우리에겐 적어도 육백년 역사의 도읍지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왜 그런 좋은걸 무시하고 타워팰리스 같은게 우리의 자랑인양 내세우는겔까.. 우리나라에게 들리는 외국인들, 걔네들 나라에도 다 그런것들, 더 좋은것들 더 많이 있다.
우리가 관광자원으로 내세워야 할 것은 600년 골목길 문화이지,
왠 원자폭탄 뚜욱뚜욱 떨어뜨린것 같은 주상복합 문화는 아니지 않은가.
낙수장의 오리지널 영어 대명사가 Fallingwater 이니, 이 계곡물 위 이 건물의 이름은 인왕산 낙수장 어떤가. ^^
인왕산 Fallingwater 유스호스텔은 지금 영업중인 남산의 아주 깊은곳 접근성 드럽게 안좋은곳의,
옛날 깊이 숨겨져있던 안기부청사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서울 유스호스텔보다는 매우 사랑받을듯 하다.
외국인이 서울에 관광와서 외로이 남산철갑을 바라보며 도 닦을일 있나.
유스호스텔 바로 코앞에 사람들 북적거리며 살고, 재래시장까지 끼고 느티나무 사랑방 있는
이 인왕산 낙수장 유스호스텔에 난 머물고 싶다.
* 옥인아파트 가는법
*사족
경복궁 옆길로 빠져서 올라가는중의 효자동에는 오랜 전통의 통인재래시장이 있다.
요즘 현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돔을 달았는데... 아래와 같다. 하하 나 뭐 하나 더 떠올렸다.
사진왼쪽]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다른 명작,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돔
사진오른쪽] 옥인아파트 가는길의 효자동 재래시장 돔.
예 예 어째 제눈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키치스러운 버전입니다. 이힛~!
효자동 통인시장 기름떡볶이, 사실 간장기름 무쇠판 볶이 라고 해야 맞다.
내가 찍은 사진은 좀 별루지만, 이 사람 새끼손가락 만큼 가늘고 쫄깃한 이 간장기름 무쇠판 떡복이는,
아줌마가 달구어진 무쇠판에 후루룩 볶아 주시는데, 그 무쇠판 감칠맛이 참 맛나다.
혹시나 이글보고 옥인아파트 보러가시는분(허물어질날 얼마 안남았다) 가는길에 이 기름떡볶이 드셔보시라.
인왕산 자락 올라야 하니 좀 에너지도 필요하고, 이 떡볶이 정말 아삭아삭 맛있다우..
올라갈땐 경복궁 모퉁이에서 커피 한잔 사들고 올라가고,
인왕산 관람후 내려와서 드시면 금상첨화.~
이상, 묻히지 말아야할 골목길 근현대문화유산보기 걷기여행이었습니다.
참고문헌
낙수장
http://www.carnegiemuseums.org/cmag/bk_issue/1999/marapr/feat1.htm
http://en.wikipedia.org/wiki/Frank_Lloyd_Wright#Japanese_art
http://en.wikipedia.org/wiki/Fallingwater
효자동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62543
옥인아파트 이미지: 이완호영상 갤러리꿈 - 겨울을 제외한 모든 옥인아파트 이미지 출처
http://blog.empas.com/aron0707/
낙수장 이미지 일부:
http://owl.isloco.com/entry/Falling-Water-%EC%9D%BC%EB%AA%85-%EB%82%99%EC%88%98%EC%9E%A5